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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희망이 있다 1,159 - 조회
: 파수꾼  2017/01/02 - 등록


‘옛날에는 잠수함 속에 흰토끼를 태우고 다녔다.
흰토끼는 산소가 많고 적음에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다.
그래서 잠수함 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사람보다 7시간 먼저 죽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흰토끼를 통해서 잠수함에 새 공기가 필요한 때가 된 것을 알고
물위로 올라 산소를 가득 품은 공기를 보충한다.’

<버질 게오르규>가 쓴 소설 ‘25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기술 관료주의 문명을 비판하는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트라이안>의 대사를 통해서 말이다.
“난 요즈음 웬일인지 잠수함을 탔을 때처럼 숨이 가빠서 미칠 것 같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승무원으로 근무한 <게오르규>는 소설에서 자신의 체험을 재료로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기술 노예로 전락해버린 오늘날 세계의 시간을 ‘25시’라고 절규한다.
그 뜻이 이렇다.

“이것은 모든 구체적인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이야.
메시아의 강림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간이야.
이건 최후의 시간이 아니고 최후의 시간에서 한 시간이 지난 때야.
이게 서구 사회의 정확한 시간, 다시 말하면 현재의 시간이지.”

사실 <트라이안>의 고발은 완전한 비관주의는 아니다.
아직도 무언가를 고발하며 몸부림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갈망하고 있는 비관주의’라 할 것이다.

25시란?
시각을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마지막 시간보다도 한 시간 더 지난 때’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그렇게 깊은 절망을 말하는 만큼 이상하게도 거기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희망의 갈증이 느껴진다.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직설법으로 표현된 이 말은
사람의 삶에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표현은
생명 존재의 기본 명제이다.

이것을 포기하고서는 사람은 살 수 없으니까요...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삶에는 언제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역사라는 것이 희망과 절망으로 직조된 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 가운데서 어느 것에 더 눈길을 주고 거기를 중심으로 삶을 꾸려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희망을 바라보고 거길 중심으로 미래를 열어나간다면 삶은 희망적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절망에 묻혀서 그걸 중심으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길이 있을 수 없다.

지난 역사와 질곡의 산맥을 보라~
그러나 옛 믿음의 사도들과 선진들은 절망을 피하지 않았다.
부딪치고 싸우고 쟁취하였고 승리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절망을 바라볼 때도 그 절망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거기에서 희망의 싹이라도 발견하려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

고교 때 봤나요,
한참이나 오래 전에 봐서 정확하게 문구가 기억나지는 않는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감동적인 대사가 있다.

언젠가 이 대사를 생각나는 대로 대강 내 표현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아는 장로님 내외분이 내 얘기를 듣고는 댁에서 그 영화 컴팩트디스크(CD)를 한참이나 돌리면서 바로 그 장면을 찾아서 내게 정확한 대사를 적어 주셨다.
“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하나님의 뜻은 희망의 흐름 속에 있다.
희망은 앞날이 열려 있다는 확신이다.

미래의 시간에 대하여 즐겁고 행복한 생각을 할 수 있음이다.
역사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끊어지지 않는 희망의 줄이 그것일 것이다.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위기고, 혼돈이고, 공허이고, 절망이고,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직설법의 명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현상적인 경기예측이나 경기의 흐름으로 말한다면 요즈음은 사회변동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온탕과 냉탕을 하듯이 희망과 절망이 뒤섞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으로 말한다면, 여당이야 언제나 잘 된다고 주장할 것이고, 야당은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말해야 좋다고 할 것이다.

각자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희망적으로도 또 절망적으로도 볼 수 있다.

지금 얘기는 뭐, 이런 것들과 연관된 얘기가 아니다.

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든지 상관없이 삶의 근본적인 태도가 내세 소망이요, 희망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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